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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이민자 애환 서린 스왑밋이 저문다

‘스왑밋(swapmeet)’은 단순한 재래시장이 아니다. 그곳은 생계를 유지하려고 치열하게 살았던 한인 이민자들의 삶과 역사가 녹아있다.   스왑밋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지난 수년 사이 유니언 스왑밋(LA), 알파인 스왑밋(토런스), 사우구스 스왑밋(샌타클라리타), 피에스타 스왑밋(사우스 LA), 서니사이드 스왑밋(프레즈노) 등 유명 재래시장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이런 가운데 LA타임스는 40년 가까이 운영된 LA지역 유명 스왑밋인 슬라우슨 수퍼몰의 한인 업주들에게 마지막 챕터가 다가오고 있다고 지난 8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 스왑밋의 많은 업주가 은퇴를 앞두고 있고 고객층이 온라인 쇼핑으로 이동하면서 스왑밋도 쇠퇴하고 있다”며 “업주들은 그동안 스왑밋에서 오랜 시간 일하며 자녀의 학비 등을 마련했지만, 자녀 세대는 그 자리를 이어받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본지도 8일 이 스왑밋을 찾아가 업주들을 만나봤다. 스왑밋은 80년대 한인 이민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슬라우슨 스왑밋은 지난 1985년에 개장했다.   1988년부터 이곳에서 신발 등을 포함한 가죽 제품 등을 판매해온 크리스틴 나 사장은 올해로 65세가 됐다. 나 사장은 “이곳에서 돈을 벌어 집도 사고 애들도 잘 키웠다"며 “예전보다 스왑밋 상황이 많이 안 좋아져서 2~3년 후에 은퇴하려고 생각 중인데 나에게는 이민 생활의 추억이 깃든 곳”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곳에는 약 120개의 업소가 있다. 이중 한인 업주들이 운영하는 곳은 80여개다. 이곳에는 각종 한식을 파는 작은 한식당도 있다. 그만큼 한인 이민자들의 일상이 자연스레 녹아있는 곳이다.   슬라우슨 스왑밋의 업주들은 4.29 폭동(1992년)의 역사도 거쳐 갔다. 당시 한인 이민자 중심으로 운영됐던 이 스왑밋을 함께 지켰던 건 흑인들이었다.   나 사장은 “그때 이곳도 3주 가까이 문을 닫았었다”며 “한인 업주들과 흑인 경비원 10여명이 스왑밋에 남아 지켜줬는데 폭동은 너무나 큰 아픔이지만 그들 때문에 이곳을 지킬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인 업주들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이민자의 삶이 생생하게 스며있다.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티모시 정(75) 사장은 “공항에서 누가 마중을 나오느냐에 따라 이민 생활이 정해진다는 말이 맞다”고 했다.   정 사장은 “1983년에 미국으로 왔는데 당시 공항에 픽업하러 나온 친구로 인해 스왑밋 비즈니스를 하게 됐다”며 “그동안 쉬는 날 없이 일만 했는데 아들 둘은 약사와 바이오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가게를 물려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슬라우슨 스왑밋도 한때 전성기가 있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차할 곳이 모자라 고객들이 인근 교회 주차장을 이용할 만큼 북적였다.   다른 스왑밋에 비하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그래도 상황은 낫지만 예전만 못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온라인 쇼핑의 활성화로 젊은 층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데다, 개발 붐으로 인한 건물 철거 등으로 스왑밋이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민자에게 스왑밋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한 고된 삶의 현장이었다. 이민생활의 희로애락이 배어있다.   지금은 철거된 유니언 스왑밋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이해진씨는 “한인과 라틴계 등 수많은 이들이 스왑밋에서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며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며 “스왑밋이 쇠퇴하는 것을 보니 한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스왑밋에는 한인들의 이민사가 있다. 치열했던 그들의 이민 생활은 이제 추억으로 저물고 있다.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스왑밋 슬라우슨 스왑밋 이민 생활 이민자 LA 로스앤젤레스 장열 미주중앙일보 아메리칸 드림 한인 슬라우슨 수퍼몰 80년대

2024-03-10

아메리칸 드림에 340만불 필요…일반 근로자 평생 소득의 2배

‘아메리칸 드림’ 성취 비용이 일반인들의 평생 소득보다 훨씬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전문 웹사이트 인베스토피디아의 최신 설문조사에 따르면 결혼부터 은퇴 저축까지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는데 평생 약 340만 달러가 소요된다고 CBS뉴스가 12일 보도했다.   이는 주택을 소유하고 두 자녀를 18세까지 양육하는 등 전통적으로 아메리칸 드림과 관련된 성취 비용을 집계한 것으로 조지타운대학의 연구 자료에서 나타난 미국 일반 근로자의 평균 평생 소득 170만 달러의 두배에 달한다.   USA투데이가 조사한 또 다른 분석에서는 4인 가족이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는데 드는 비용이 연간 13만 달러로 나왔는데 센서스국 자료에서는 중간 가구소득이 7만4450달러로 나와 역시 크게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베스토피디아의 분석은 맞벌이 부모가 분담할 수 있는 대학 학비 및 가족 의료비 등 일부 비용을 포함하는 것으로 육아, 주택 구입과 같은 비용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많은 가정이 중산층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재정적 압박에 직면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타운대학의 통계에 따르면 박사 학위 또는 MBA와 같은 전문 학위를 소지자의 소득은 각각 330만 달러와 360만 달러로 중산층의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베스토피디아가 추산한 아메리칸 드림과 관련된 몇 가지 특징을 성취하기 위해 한 가족이 지출해야 하는 비용을 살펴보면 병원 출산으로 건강보험을 가진 사람들의 평균 부담금 5708달러를 비롯해 결혼 및 결혼반지에 3만5800달러가 필요하다.   2명의 자녀를 18세까지 양육하는 비용은 57만6896달러가 소요되며 이들의 1년치 대학 학비는 4만2080달러에 달한다.   또한 평생 10대의 차량 구매 비용 27만1330달러를 비롯해 평생 모기지를 포함한 주택 구매비용 79만6998달러, 애완동물 사육비는 6만7935달러 추산됐다.   26세부터 65세 사이에 드는 건강보험비용은 93만4752달러로 다른 비용에 비해 가장 높았으며 은퇴비용 71만5958달러, 장례비 7848달러 등도 필요하다.   인베스토피디아는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1년 이상 지불하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자동차를 더 적게 사는 가정도 있는 등 추산 비용은 가족의 목표 수준에 따라 더 낮거나 높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낙희 기자 naki@koreadaily.com아메리칸 근로자 아메리칸 드림 주택 구매비용 중간 가구소득

2023-12-13

[뉴스 포커스] ‘네포 베이비’와 ‘아메리칸 드림’

한국에 ‘금수저’가 있다면 미국에는 ‘네포 베이비(nepo baby)’들이 있다. 부유층이나 명문가에서 태어나 부모덕에 유명세를 얻은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부모가 유명하다고 자녀도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들의 출발선이 유리한 것만은 틀림없다.       요즘 주목받는 ‘네포 베이비’들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세 자녀다. 바이든의 차남 헌터 바이든은 탈세 혐의와 총기 불법 구매 혐의로 기소된 데 이어 연방하원 감독위원회 출석까지 통보받았다. 아버지의 영향력을 이용해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업으로부터 부당 이익을 취했다는 이유다.       트럼프의 자녀들은 이달 초 법정에 섰다. 트럼프 그룹의 자산가치 조작 관련 민사 소송 증언을 위해서다. 장남 트럼프 주니어와 차남 에릭은 피고인, 장녀 이방카는 증인 신분이었다. 이들은 트럼프 그룹에서 부사장 등 고위직을 맡고 있다.     전·현직 대통령 자녀들의 이런 모습은 미국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더구나 내년 대통령 선거가 바이든과 트럼프의 리턴 매치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 더 주목된다. 미국이 유지하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의 특성을 대변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아메리칸 드림’이다. 이 말에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는 미국은 기회의  나라이고,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도 달라지고 있다. 계층 고착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수성가의 사례가 줄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도 점차 부서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아마 ‘네포 베이비’들의 증가도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다행히 ‘아메리칸 드림’을 지키려는 노력도 있다. ‘공평한 기회’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다.        프로농구팀(NBA) 댈러스 매버릭스를 소유하고 있는 마크 큐반은 괴짜 구단주로 통한다. 늘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경기장에 나타나는 그는 점잖은 모습 대신 열정적이다. 종종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하다 벌금을 부과받기도 한다. 그는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경영대학원(MBA)를 졸업하고 은행원 생활을 하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체를 창업해 성공을 거뒀다. 이후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분야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고 자산 규모가 50억 달러가 넘는다는 평가다.     하지만 자녀들에게는 인색하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누구의 아들, 딸’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불리는 순간 ‘얼간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에게는 10대와 20대인 자녀 3명이 있다. 당연히 이들은 어려서부터 필요한 것이 있으면 스스로 벌어 해결했다고 한다. 큐반은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 내가 체크를 써 주거나 크레딧카드를 만들어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고 한다.       로렌 파월 잡스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미망인이다. 잡스가 숨지면서 그녀는 엄청난 자산을 물려받았다. 블룸버그의 추산에 따르면 그녀의 자산 규모는 217억 달러나 된다. 그런데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천수를 다하게 되면, 나의 재산도 나와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녀는 “남편도 생전에 자녀들에게 부를 유산으로 남기고 싶어하지 않았다”며 “사회가 올바로 유지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모든 재산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 명문대학의 ‘레거시 입학’을 금지하는 법안이 연방상원에서 발의됐다.‘레거시 입학’은 동문이나 거액 기부자의 자녀에게 혜택을 주는 것으로 부유층에 유리한 입학제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네포 베이비’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혜택인 셈이다. 그러나 민주·공양 양당 의원들의 공동 발의에도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전망이다. 특권층의 특혜 한 가지를 없애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아메리칸 베이비 아메리칸 드림 트럼프 그룹 장남 트럼프

2023-11-16

한인작가 3인전 ‘아메리칸 드림’…미셸오·로버트이·제이슨장 참여

“뛰어난 작가가 많은 한국 미술계가 잘 알려지지 않았고 미국 작가의 다양성도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   지난해 여름 세계 아티스트들이 작품 전시를 꿈꾸는 최고의 아트 갤러리가 모여있는 베벌리힐스에 ‘스캇앤제이 갤러리(관장 제이 소)’를 개관한 제이 소 관장은 개관전 소감에서 미주지역 한인 미술계 작가를 알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소 관장은 새해 첫 전시로 주목받고 있는 한인 작가 3인 초대전 ‘코리안 아메리칸 드림’으로 포문을 열었다.     그는 “미국에 이민 와 각자의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뛰어난 작품 세계로 주목받는 코리안 아메리칸 작가들을 초청했다”며 “서로 작품 세계가 다른 3인 작가의 다양성을 감상할 기회”라고 설명했다.     참여 작가는 미셸 오, 로버트 이, 제이슨 장으로 오일 페인트로 화려하게 그린 꽃들과 나무판을 조각칼로 조각해 작업한 추상화 그리고 벽화를 그리듯 간결하게 그린 정밀화 등 총 21점이 전시된다.     미셸 오 작가는 한인 1세대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중견 작가다. 오 작가는 “기도하며 모든 생활에 축복을 전한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작업한다”고 밝혔다.   모든 자연을 자기만의 세계로 해석해 아름다움을 작품에 표현하는 로버트 이 작가는 UC샌디에이고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화가로 변신한 1.5세다. 2세인 제이슨 장은 패서디나 아트센터 졸업 후 동양문화에 등장하는 12 동물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벽화 전문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스캇앤제이’는 한국에서 고미술 컬렉터로 활동하며 헬렌제이 갤러리를 운영하는 오빠 스캇과 제이 소 관장의 이름이다. 디벨로퍼와 작품 컬렉터인 제이 소 관장은 2021년 서울 삼청동에 ‘헬렌앤제이 갤러리’ 개관에 이어 지난해 베벌리힐스 라시에네가에스캇앤제이 갤러리를 오픈했다.     ‘코리안 아메리칸 드림’ 전시회는 오늘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열리며 관람 전 예약이 필요하다.     ▶주소: 215 S. La Cienega Blvd. #210 Beverly Hills     ▶문의: (424)777-0997, gallery@scottnjae.com 이은영 기자한인작가 아메리칸 아메리칸 드림 제이슨장 참여 코리안 아메리칸

2023-01-15

"아메리칸 드림 위해 '같이 갑시다'"

1903년 오늘(1월 13일) 하와이 사탕수수밭에 첫발을 내디뎠던 이민 선조들의 노고 덕분에 정확히 120년이 지난 오늘, 한인사회는 연방의회의 뜨거운 축하를 받게 됐다.     전국 각급 정부 기관과 의회에서 ‘미주 한인의 날’을 맞아 일제히 한인들의 이민사를 기리고 더 많은 발전을 기원하는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하루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2일 성명을 통해 “120년 전 오늘 102명의 한국인이 하와이에 도착해 새로운 날을 시작했다”며 “나라와 민권을 지키며 새로운 과학, 스포츠, 의료와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열고 있는 한인들의 기여는 국가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같이 갑시다(Katchi Kapshida)’”라고 축하 메시지를 마무리했다. '같이 갑시다'는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말했다.     연방하원에서는 영 김 의원(가주 39지구)이 11일 자유 발언을 통해 이민 120주년과 한인의 날에 경의를 표시했다.     김 의원은 “한인들은 1903년 노동자로서 미국 땅을 처음 밟아 지금 이곳 연방 의회까지 영향력을 넓혀왔다”며 “특히 더 나은 기회를 위해 한국전쟁을 겪었던 많은 한인이 새로운 삶을 위해 미국에 와 고생한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고 전했다. 다음 날인 12일에는 미셸 박 스틸 의원(가주 45지구)이 한복을 입고 하원 회의장에서 한인의 날을 기념해 눈길을 끌었다.     스틸 의원은 “주민을 대표하는 한인 하원의원으로서 한인사회가 일궈온 성공적인 이민 역사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며 “앞으로도 미국의 성공을 위해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LA한인타운이 지역구인 지미 고메즈 하원의원(가주 34지구)은 “한인 이민사의 역사적인 날인 한인의 날을 축하하며, 동료 의원들과 함께 세대에 걸친 한인들의 열정과 노력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내고 싶다”고 전했다.     연방의회 인근에서는 12일 앤디 김 의원(뉴저지), 매릴린 스트릭랜드(워싱턴), 주디 추(가주) 등 의원들이 참석한 한인의 날 축하 리셉션이 열렸다.     앤디 김 의원은 연설에서 “부모와 조부모님들의 용기와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가 여기에 있다”며 “앞으로의 120년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고 우리 모두 역할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동시에 브라이언 샤츠 연방 상원의원(하와이), 댄 설리번 연방 상원의원(알래스카) 등 한국연구모임 소속 의원들이 일제히 한인의 날과 이민 120주년을 축하 메시지를 냈다. 김치의 날 선포로 한인들에게 익숙한 캐롤린 멀로니(뉴욕) 연방 하원의원도 한인들의 노고를 위로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메시지에서 미국의 발전에 기여한 수많은 한인을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한미 우방 관계도 더욱 돈독해지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자고 덕담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오늘 오전 LA 시의회에서는 존 이 시의원 주최로 제임스 안 LA한인회장, 이병만 미주한인재단 LA회장, 김영완 총영사 등 주요 한인사회 인사들이 초대된 가운데 축하 모임이 열릴 예정이다. 최인성 기자미국 아메리칸 아메리칸 드림 한인 이민사 한인 하원의원

2023-01-12

“한인 여성 판사 또 나올 것”

    “주경야독으로 변호사가 됐고, 판사까지 임용됐죠. 약점은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메릴랜드주정부내 최고위 한인 공무원인 박충기(사진) 수석 행정판사는 미국에서의 삶을 이렇게 정리했다.   박 판사는 “학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1982년 첫 직장을 워싱턴 DC에서 연방 특허청 심사관으로 근무했다”며 “처음에는 어시스턴트 특허 심사관으로 일을 시작했고 나중에는 수석 심사관이 됐다. 심사관으로 일하며 변호사들을 많이 만나면서 나의 전문성과 접목하면 좋은 변호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직장을 다니며 야간으로 가톨릭대 로스쿨을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89년 7월에 변호사 시험을 치고는 유니온 카바이드라는 화학대기업에 취업을 했다. 산업 개스 디비전에서 2년을 일했는데, 회사가 분할되면서 특허법원의 판사였던 수퍼바이저가 자리가 났으니 한번 지원해 보라고 한 것이 계기가 돼 행정판사가 됐다”고 회상했다. 박 판사는 수석 행정판사 직책에 대해 “행정판사로 23년을 일하고 은퇴했는데, 래리 호건 주지사가 2020년 6월 수석 행정판사로 나를 임명해 다시 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60여 명의 행정판사의 수장인 박 판사는 이들을 임명 또는 해임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는 ”메릴랜드 첫 한인 여성 판사를 임명했고, 이번에도 자리가 5개 나는데 어쩌면 한인 여성 판사를 또 임용할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판사 선발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5명의 셀렉션 커미티(selection committee)가 100명 정도의 이력서를 추려서 40~45명을 인터뷰한 후 30분 정도 필기시험을 치르는데, 이번에는 20명의 후보를 추려서 내게 보고하라고 했다. 그 20명 중에서 내가 5명을 뽑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박 판사는 가족이민으로 71년도에 앨라배마주로 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춘기 시절 미국에 온 그는 “한국에서 당시 방영하던 ‘털보가족’ 같은 미국 드라마를 보고 미국은 모두 뉴욕처럼 화려한 곳인 줄 알았는데, 앨라배마주에 도착하니 주변에 농장밖에 없었다”면서 “실망했지만 탈선의 위험이 전혀 없었다(웃음). 그래서 운동에 집중해 미식축구에도 빠졌었고, 유일한 동양사람이라 이소룡이라고 착각한 사람들이 많아 책을 보며 혼자 무술을 배우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박 판사는 “부모님이 영어를 못해 일을 어렵게 하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공부를 안 해 자신감이 없었는데, 미국에서는 수학을 상대적으로 잘하니 자신감이 생겼다. 앨라배마 시골에서 전교생 100명뿐인 고등학교에 다닌 터라 대학교에 가서 치열한 경쟁에 고생을 하기도 했었지만,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다”며 “영어 글쓰기에 자신이 없어서 이공계를 선택하기도 했는데, 특허청 심사관으로 일하며 매일 방대한 양의 영어문서를 읽고 쓰면서 약점을 강점으로 바꿀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정원 기자 김정원 기자 kimjungwon1114@gmail.com판사 수석 행정판사 아메리칸 드림 박충기 판사

2022-11-28

"사원 자녀들의 아메리칸 드림 실현"

    미주 대표 대형 동양식품 유통점인 ‘롯데 플라자 마켓(회장 이승길)'이 우수 직원 자녀 15명을 선정, 각각 2000달러씩 총 3만 달러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장학금 수여식 대신 부모들인 직원들(1년 이상 근속)에게 지난 19일과 21일 이상민 사장이 직접 전달했다. 롯데 플라자는 직원 자녀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해 주고자 지난 2011년부터 장학금을 수여해 왔다. 또한 직원들에게 차별화된 혜택을 주고자 올해부터 고용주 매칭 기여금 유형으로 401K 은퇴연금를 제공하고 있다. 장학금을 받은 자녀들은 “부모님들의 헌신을 잘 알고 있다”며 “회사에서 그 수고를 알아주고 격려해 주어 감사하다. 또한 롯데 플라자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감사하다”고 전했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김경준, 김수린, 문희진, 오윤재, 양우진, 양예진, 이승학, 김윤철, 한사랑, 전하람, 이재준, 이세별, 전현수, 김다빈, 임찬혁 군까지 15명이다.   이상민 사장은 축하 메세지를 통해 “지난 수년간 팬데믹과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냈는데 이제는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고 있어 감사하다.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에게 중요한 관계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가족, 친구, 그리고 우리가 속한 회사는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관계다. 대학시절은 사회생활의 근원이 되는 이런 관계를 기억하고 돌아보기에도 좋은 시간”이라며 “롯데를 대표해 장학생 여러분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김정원 기자 kimjungwon1114@gmail.com롯데 아메리칸 아메리칸 드림 사원 자녀들 직원 자녀들

2022-09-27

“배스 발언, 아메리칸 드림 짓밟는 것”

한인식품주류상협회(KAGRO·캐그로)가 캐런 배스 캘리포니아 연방하원(37지구) 의원의  LA 폭동 당시 발언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배스 의원은 1992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흑인 폭도들의 한인 운영 리커스토어 방화를 “기적(miracle)”이라고 표현하며 방화범들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본지 12월 14일 A-3면〉 이와 관련, 캐그로는 지난 14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배스 의원은 현재 LA 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며 유력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캐그로 측은 배스 후보의 낙선 운동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캐그로의 김중칠 이사장은 배스 의원이 LA 시장 후보로서 문제의 발언을 한 배경에 대해 한인사회 뿐 아니라 당시 리커스토어를 운영했던 한인들에게 반드시 사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LA 주요 한인단체들과 연대해 배스 후보의 낙선 운동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민자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짓밟는 발언이다. 한인 상인들을 비하하는 눈으로 바라본 인물이 LA 시장 선거에 뛰어들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다”면서 “우리를 경멸하는 말로 들린다. 남의 사업장을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게 말이 되냐. 분통 터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캐그로 멤버들이 관련 기사를 보고 모두 격앙된 상태”라며 “화를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분도 계셨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잿더미가 된 리커스토어를 다시 일으키려 했던 노력을 최전선에서 가로막았던 장본인이 배스라는 사실에 더욱 화가 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우리가 한인이 아니고 흑인 업주였다면 배스 의원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배스 의원이 폭동 원인을 업주들 탓으로 돌린 발언에 대해서도 “역사를 거꾸로, 완전히 잘못 보고 있다. LA폭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질타했다.     배스 의원은 92년 6월 2일자 LA타임스 기고문에서 “리커스토어가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fuel the rage)”며 “우리 단체가 그들 비즈니스의 파산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LA 폭동 유발 업소의 재오픈은 비극이 될 것”이라며 영업 재개를 반대했다.   한편, 배스 후보는 본지에 “내용이 와전된 것”이라며 “30년 전에 했던 인터뷰 내용은 현재 나와 커뮤니티 간의 관계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지만 사과를 표명하지는 않았다. 원용석 기자아메리칸 배스 배스 발언 아메리칸 드림 배스 후보

2021-12-15

"한쪽에서는 굶어 죽는데 생일잔치가 웬 말"…맨해튼 북한대표부 앞서, 탈북자들 오늘 규탄 시위

북한이 오는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을 맞아 각종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탈북자 단체들이 오늘(15일) 오전 11시 맨해튼 주유엔 북한대표부 앞에서 규탄시위를 벌인다. 미주탈북자선교회 산하 평양예술찬양단을 이끌고 있는 마영애 단장은 “북한대표부가 뉴욕에서도 주요 외교사절을 초청해 김정일의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를 가질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한편에서 북한 주민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뉴욕에서 이런 행사를 갖는 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시위 배경을 설명했다. 시위에는 마 단장을 비롯해 미국에 머물고 있는 탈북자들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에서도 탈북자 단체들이 김 위원장의 생일을 앞두고 연합해 대북전단 날리기에 나선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16일 낮 12시에 파주 임진각에서 탈북자단체들이 모여 대북전단을 띄울 것”이라며 “탈북자 단체가 연합해 대북전단을 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대북전단 날리기 행사에는 북한민주화위원회와 탈북자동지회, 북한인민해방전선 등 22개 단체가 참여한다. 안준용 기자 jyahn@koreadaily.com

2011-02-14

['아메리칸 드림' 일구는 신세대 탈북자] "내 이름은 조셉…SAT 준비하러 LA 왔어요"

일반 탈북자들과는 큰 차이, 유튜브에 동영상 등 올리고 SAT 준비하며 명문대 노려 한인 위탁가정서 신용 마찰, 이민자가 겪는 수업료 치러…통일, 북한주민에도 희망줘야 조셉 김(20)은 3년 전 학교 미술시간에 나무를 그렸다. 나무는 그의 인생이다. 그림 속 꺾어진 나뭇가지는 부모를 잃은 것을 뜻한다. 대신 가지가 많다. 친구들이다. 그의 나무는 키가 작다. 자라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란다. 기자는 지난 해 10월 처음으로 조셉을 만났다. 유튜브에 오른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서다. 동영상 속의 소년은 일반 탈북자의 모습과 달랐다. 너무 활기차게 축구공을 차는 모습이 마치 나이키 광고 같았다. 영상 밑에 붙어나오는 자막만이 그의 과거를 확인시키고 있었다. "내 이름은 조셉입니다 저는 북한사람입니다. 축구를 좋아합니다. 북한에선 축구를 하면서 배고픔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탈북자 인터뷰는 쉽지않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셉은 다를 것 같았다. ▶ 소년 김광진 조셉이 됐다 8월 초 LA에서 남쪽으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링크(LiNK) 사무실을 찾아 갔다. 링크는 탈북자들의 미국정착을 돕고 있다. 조셉이 거기 있었다. 조셉은 난민지위를 인정받아 미국에서 살고 있는 탈북자 중 한 명이다. 링크에 따르면 2010년 6월 현재 99명의 탈북자가 미국 영주권을 받았다. 조셉은 그의 본명이 아니다. 16살 까지 김광진으로 살았다. 소년 김광진의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이다. 두만강을 지척에 둔 중국과의 국경지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모 김정숙이 태어난 곳이다. 그래서인지 북한의 다른 곳 보다는 경기가 활기찬 편이다. 하지만 회령주민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배고프기는 마찬가지다. 김광진의 아버지는 회계일을 하다 결국 굶어 죽었다. 어머니와 누나는 중국으로 탈출했다. 혼자 남겨진 광진은 소학교(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 그만 뒀다. "고아로 4년을 살았어요. 빌어 먹어도 보고 도둑질도 했어요. 하지만 항상 배가 고팠어요. '여기 있으면 100% 죽는 게 확실하다 그렇다면 중국으로 가자. 살 확률이 50%는 되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6년 2월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넜다. 그것도 낮에 건넜다. 무엇보다 밤이 무서웠다. 또 밤에 건너다 잡혔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의 처음 한 달 간은 북한에서 보다 더 자유가 없었다. 중국 공안에게 잡힐까봐 밖으로 다니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조금 피곤하면 악몽을 꾼다. 중국에 있는데 경찰들이 와서 문을 두드리는 꿈이다. 깨어나 보면 베개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2007년 2월15일 링크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왔다. 17살 때다. 그 이후로 김광진은 조셉 김이 됐다. ▶ SAT만 없으면 낙원이다 "내가 에세이에서 엠퍼사이즈(emphasize:강조하다)했던 건 북한을 탈출해 미국에서 공부를 하게 된 과정과 문화차이 내 꿈들이에요." 조셉은 미국에 온 지 3년이 됐다. 청소년이라 적응이 빠르다. 인터뷰 중간 중간 영어가 튀어나온다. 조셉은 버지니아의 위탁가정에서 미국인 양부모와 지낸다. 하지만 영어 발음은 아직 고칠 때가 많다. "사전 하나 가지고 영어공부를 하는데 발음기호를 읽을 줄 몰라요. 무조건 단어만 하루에 50개씩 외워요." 조셉은 늦깎이 고등학생이다. 나이는 20살이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다. 다른 청소년들 처럼 대입준비를 해야 한다. 조셉은 여름방학 동안 SAT(대학입학시험)준비를 위해 LA에 왔다. 링크가 소개시켜 준 자원봉사자가 조셉의 학업을 돕고 있다. 아침 10시 부터 오후 3시까지 개인교습을 받는다. "하루 2~3시간 자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에세이를 쓸 때는 1시간도 못 잤어요. SAT만 없으면 낙원이 따로 없을 것 같아요." 지금은 점수가 1200점 밖에 안된다. 2400점 만점에 반타작을 하는 셈이다. 목표는 1800점 이상 점수를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점수와 상관없이 하버드 예일대 등 최고 명문대에도 지원할 생각이다. 조셉은 대학지원 에세이에 농구 얘기를 적었다. 미국생활에 적응하던 조셉의 첫 시련은 언어도 이념도 아니었다. 농구였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의 자존심을 건든 것이다. "학교에서 농구를 했어요. 규칙도 모르고. 말도 못 알아듣고. 북한에서는 농구공을 2번 만져봤어요. 친구들이 무시하듯 뭐라고 하는데 너무 속이 상했어요. 운동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농구공을 사서 하루 2시간씩 연습했지요." 같은 또래 아이들이 사춘기를 경험할 때 조셉은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이에 비해 생각이 깊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 "나도 모르게 예민질 때가 있어요. 그 때는 농담해도 짜증이 나요. 하지만 부모님이 모두 양부모라 (반항같은 것을) 못해요." ▶ 김일성 장군 노래를 불렀다 SAT공부를 위해 LA에 있는 동안 조셉은 링크가 제공하는 집에서 링크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생활한다. 그 곳에는 대니가 있다. 또 다른 탈북 청소년이다. 대니는 오랜 만에 '북한식 김치'를 먹었다. 북한식 김치는 담그는 방법이 다르다고 한다. 엄마가 직접 담가 준 김치다. 대니는 3년 전 중국에서 엄마와 헤어졌다. 엄마는 대니를 따라 미국으로 오려했지만 주중 미국 영사관 앞에서 중국 공안에 붙잡혔다. 우여곡절 끝에 엄마는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 엄마가 지난 2월 대니를 보러 미국을 방문했다. 엄마와 샌타모니카 해변을 걸으며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둘은 많이 울었다. 대니도 조셉처럼 함경북도 회령이 고향이다. 대니가 3살이 더 많다. 대니는 18살에 북한을 탈출해 중국 용정시에서 살았다. 선교사를 통해 링크를 알게 됐고 미국 올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고향은 같지만 조셉과 대니가 처음 만난 것은 중국에서다. 둘은 링크의 도움을 받아 북한으로 오기 전 까지 중국에서 6개월을 함께 있었다. 탈북자들은 보통 중국 내 미국 영사관에서는 4개월 정도 신분확인 과정을 거친다. 진짜 탈북자인지 확인을 하는 기간이다. '김일성 장군' 노래나 북한의 최신유행 가요를 불러 보라고 한다. 고향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물어본다. 대니는 북한에서 학교를 그만둔 사정을 얘기했다. "교육은 무료입니다. 하지만 사실상 학부모에게 돈을 요구해요. 돈이 없으니 토끼가죽 같은 것을 가져다 주기도 하는데 저는 그게 싫어서 학교에 안 나갔어요. " 2007년 미국으로 오면서 조셉은 버지니아 대니는 유타의 위탁가정에서 살게 됐다. ▶이민자가 겪는 수업료 냈다 보통 탈북자들은 한국과 미국중 하나를 목적지로 선택한다. 미국을 택하면 왜 미국으로 가려하느냐고 묻는다. 왜 한국을 택하지 않았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조셉은 영어 때문에 미국을 택한 경우다. "한국사회는 영어를 무척 강조하는 것 같아요. 영어를 모르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미국을 택했어요." 대니는 중국에서 봤던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그냥 자유를 찾아 왔다고 했어요. (미국 영사가) 한국은 자유가 없냐고 미국행을 허락하지 않았어요. 영사관에 머무는 동안 '신입사원'이라는 드라마를 보게됐어요. 좋은 대학을 나온 주인공이 컵라면 먹어가며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는 거에요. 미국 가는게 나을 것 같다고 다시 말했지요." 미국 생활은 그러나 대니의 예상과 달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 앞에 일하는 직원이 칠리를 잘못만든 채 퇴근해버렸어요. 매니저가 제대로 안 만들었다며 저에게 화를 내는 거에요. 내가 한 일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는데도 당장 집에 가라고 하더군요." 대니는 미국 실정을 잘 몰라 이민자가 겪는 수업료도 톡톡히 치렀다. "유타에서 한인 가족과 함께 살았어요. 위탁가정이죠. 미국에서는 신용점수가 중요하다고 해요. 신용을 쌓아 준다고 해서 소셜시큐리리티 번호를 알려줬어요. 그런데 자꾸 제 이름으로 통지서가 와요. 700달러 1000달러씩. 산 것이 없는데 왜 자꾸 통지서가 오냐고 물어도 걱정말라는 답만 들었어요. 결국 돈을 내지 않아 콜렉션으로 넘어가고 제 신용점수도 엉망이 됐어요. 한인 가족은 형편이 나쁜 것도 아니고 벤즈 BMW를 몰면서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한민족이라고 믿었어요. 어렵게 만난 거니까 기쁘고…. 한 번 당하니까 마음이 닫히더군요." ▶통일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조셉은 축구를 좋아한다. 지난 6월에는 LA한인타운에 와서 2010년 월드컵을 구경했다. "한국-우루과이전을 보러 갔어요. 모두들 빨간티를 입고 응원을 나왔는데 저 혼자…. 북한과 브라질도 봤지요. 정대세가 우는데 저도 막 눈물이 나는 거에요. 아 박두익 감독요. 북한이 44년만에 16강 본선에 올랐어요. (수용소로 보내지거나) 그러지 않았을 것 같아요.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아직도 한국과 북한을 잘 구분 못하는 미국인들이 많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도 북한을 잘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적어도 조셉이 생각하기엔 그렇다. "북한에 대해서 묻는 게 '북한 말은 어떠냐 한 번 해봐라. 북에도 PC방 있냐 노래방은 있느냐' 그 정도죠. 그런 질문 받으면 조금 슬픈 것 같아요. 원망도 들고. 전쟁 이후 세대를 조금만 교육했으면. 사실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지금 세대들인데. 기껏 물어본다는 게…" 묵묵히 조셉의 얘기를 듣고 있던 대니도 끼어 들었다. "한숨이 나와요. 그냥 왕래만 할 수 있으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남북한이 같은 상황에서 시작해 한국은 올라섰는데…. 젊은 층은 통일하면 한국도 다시 힘들어 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 돈을 아까워 하는 것 같아요. 통일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동서독 통일을 예로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조셉이 말을 이어갔다. "남북한은 독일과 다르다고 생각해요. 동서독은 계획대로 통일 된 것이 아니고 갑자기 됐어요. 한국은 독일을 사례를 경험했으니 정부에서 미리 통일을 준비하고 있을 거에요. 저 같은 고등학생도 생각하는 일을 정부에서 안 할 리가 없으니까요." 한국에선 최근 통일세가 논란이 됐다. 통일이 될 경우 드는 경제 비용을 대비해 지금 미리 세금을 걷자는 아이디어다. 하지만 통일세에 대한 반발도 심하다는 얘기를 조셉에게 해줬다. "국민 모두가 정치인은 아니니까요. 회사 출근하고 하루 하루 살다보면 (반대하는 것도) 이해는 되요. 공부만 열심히 하는 학생들도 모를 수 있지요.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충분히 (통일세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대니는 통일 이후에도 걱정이 된다고 했다. "통일이 돼도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 것인지 혹시 북한 고위층이 또 계속 권력을 유지하고 일반 주민들은 계속 고통을 받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돼요. 통일은 북한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방식이 돼야 할 거에요. 통일이 되면 일반 북한 주민들도 잘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할 필요도 있어요." ▶ 배고픔은 정치를 모른다 조셉은 일반 청소년들 보다 아무래도 북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그에게 북한은 무엇일까. 망설임 없이 '고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북한은 힘들 때도 편할 때도 그리워하는 '고향'이에요. 나서 자란 곳이지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신변보장이 된다면 다시 가보고 싶어요."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조셉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햇볕정책이 무엇인지 북한 주민들은 몰라요. 다만 옥수수 값이 내리면 좋아하죠. 바로 천진항에 한국에서 옥수수가 들어 올 때지요. 숨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잠시 숨을 쉬게 해주는 것이지요.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작은 것은 포기하는 것 같아요.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 까지 대화를 중단하는) 지금의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북한 사람들에게 결국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통일이 된다고 해도 어려서부터 체제유지를 위해 세뇌를 당한 북한 주민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지 궁금했다. "세뇌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은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김정일은…믿지 않아요. 세뇌된 것을 바꾸려면 인간관계를 쌓아가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요. 먼저 친해지는 게 필요하다는 뜻이 지요." 조셉은 링크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배고픔은 정치를 모른다'는 표어가 적혀 있다. "저는 아메리칸 드림을 믿어요. 최선을 다하면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해요. 이민자도 주지사가 됐지요. 북한에 있을 때는 '20살 되면 북한 돈 100만원 벌겠다'는다 게 꿈이었어요. 지금은 돈 보다는 원없이 배우는 게 목표에요. 정치학도 공부하고 경제도 알고 싶어요.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어요. 북한 주민들에게 꿈이 되고 싶어요. '최선'이라는 글자를 좋아해요. 실패해도 후회는 없을 거에요." 대니는 일자리를 찾는게 목표다. 고등학교 검정고시(GED)를 준비하는 것도 취직을 위해서다. "스스로 독립해야지요. 취직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에필로그 17일 LA한인타운에서 남쪽으로 30분 정도 떨어진 도시 토런스의 한 한식당. 조셉 대니 그리고 '신'이라고만 불리는 또 다른 탈북자 한 명과 저녁을 함께 했다. '신'은 북한 수용소에서 태어난 탈북자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알리는 홍보활동을 펼치다가 위협을 받은 적이 있어 인터뷰에 동참하지 않았다. 신은 조셉을 신세대 탈북자라고 불렀다. 조셉은 페이스북으로 친구와 연락하고 고향이 그리우면 구글어스를 찾아가 회령의 모습을 살핀다. 조셉은 아직 먹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많은 청소년이다. 조셉은 한 달 100달러의 용돈을 비영리단체로 부터 지원 받는다. 나머지 필요한 용돈을 벌기 위해 지난해 까지 매일 파트타임으로 버지니아의 식당에서 일했다. 올해는 대입준비를 위해 일하는 시간을 줄였다. 그러다 보니 늘 먹는 게 만족스럽지 못한 모양이다. 그날 우리는 김치만두 우거지 갈비탕 보쌈 순두부찌게 등을 푸짐하게 시켜 먹었다. "북한에 이런 말이 있어요. 잘 먹는 날이 명절이라고. 오늘이 명절이네요. 형 통일되면 두만강에서 고기 잡아 어죽 만들어 함께 먹어요." ■링크(LiNK)는…탈북자 지원·북한인권 개선, 한인 2세 주축 비영리 단체 한인 2세들이 주축이 된 비영리 단체로 탈북자 지원과 북한의 인권문제를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2004년 설립돼 탈북자 15명의 미국 정착을 돕고 동영상 등을 제작 미 전국을 돌며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EU의 북한인권 청문회에 참석하는 등 국제무대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문의: (310)212-7190 글=김기정 .사진=김상진 기자 kijungkim@koreadaily.com

201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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